논문명 |
엔타시스와 배흘림에 관한 건축사적 고찰 / 법륭사건축론(法隆寺建築論)을 중심으로 / A Study on Entasis and Wooden Columnal curvature in the Far East - Architectural Theory of Horyuji Temple - |
저자명 |
황보봉 |
발행사 |
대한건축학회지회연합회 |
수록사항 |
대한건축학회지회연합회 논문집, v.16 n.03 (통권61호) (2014-06) |
페이지 |
시작페이지(43) 총페이지(9) |
ISSN |
1229-5752 |
주제분류 |
역사 |
주제어 |
법륭사건축론(法隆寺建築論) ; 이토 추타(伊東忠太) ; 엔타시스 ; 배흘림 기둥 ; Architectural Theory of Horyuji ; Ito Chuta ; Entasis ; Wooden Columnal curvature |
요약1 |
이 논문은 엔타시스 양식의 개념을 제시하고 상호 무관한 엔타시스 양식과 배흘림기둥이 어떻게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과 진행과정을 이토 추타(伊藤忠太)가 주장한 법륭사건축론(法隆寺建築論)을 통해 밝히고자 한다. 법륭사건축론에 나타난 엔타시스와 배흘림의 연계성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비약과 환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본과 그리스가 고대로부터 연계되어 있다는 근거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잃어버린 고대(古代)의 문화적 동질성을 건축학적으로 입증하는 획기적인 주장이었다. 와츠지 테츠로(和?哲?)의 저서 고사순례(古寺巡禮)는 법륭사건축론의 유통과정에서 크게 기여했다. 최근의 연구경향에 의하면 파르테논의 엔타시스는 18세기의 측량기록이 과장되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그 실체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현상이며, 동양목조건축에서 엔타시스의 존재는 고대사 연구과정에서 등장한 환상과 기대의 산물이다. 또한, 신뢰할만한 학술연구가 부재한 탓에 일어난 현상이기도 하다. 엔타시스 양식와 배흘림수법의 상호 역학관계는 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며, 고대사에 대한 상상력과 기대는 건축적 환상과 문학적 허구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
요약2 |
This paper elucidates conceptions of entasis in East Asian context based on the architectural theory of Horyuji Temple, built in 711, advocated by Japanese architect Ito Chuta in 1893. The use of the word 'entasis' for Japanese or Korean wooden columns has not been academically defined nor agreed among historians, but it has been widely used in both countries to describe columnal curvature in traditional temples. In this context, this paper intends to build a historical account of Ito's theory and its dissemination. Japanese scholar Watsuji Tetsuro's best selling publication in 1919 eulogized Horyuji Temple with a reference to Ito's theory suggesting entasis might be a fossil remnant of cross-continental cultural interchange. It greatly promoted Ito's theory countrywide and the idea of entasis being homogeneous phenomenon is continuously practiced today. Recent scholarship upon classic architecture has shown that entasis is largely exaggerated in the earlier studies. For example, entasis in the Parthenon is not observable by naked eyes. Its subtle existence is aesthetical rather then optical. This paper argues that the lack of reliable scholarship has fed and patronized recurrent fantasies of ancient East-West relations. |
소장처 |
대한건축학회지회연합회 |